영화 '쉘부르의 우산'은 자끄 드미 감독의 1964년 작으로 롤라(1961),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과 함께 낭만 3부작으로 불리는 영화이다. 까트린느 드뇌브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영화 '라라랜드'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시네 오페라의 시초 같은 영화이다.
줄거리
우산 가게 딸 주느비에브는 자동차 정비공인 기이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둘은 아이를 낳으면 '프랑수아즈'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는 등 미래를 약속한 사이이지만 주느비에브의 어머니인 에므리 부인은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이유로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한편 알제리 전쟁으로 징집이 된 기이는 2년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입대전날 밤 사랑을 나눈 뒤 훗날을 기약하며 이별하게 된다. 기이가 떠난 후 제정상태가 악화된 에므리 부인은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느비에브와 함께 목걸이를 팔기위해 보석상을 찾게 되지만 보석상 주인은 구매를 거절하게 된다. 이때 보석상에 있던 롤랑 카사흐는 주느비에브에게 한눈에 반해 모녀의 목걸이를 선뜻 사게 된다.
그 후 롤랑은 주느비에브에게 집요하게 청혼을 하게 되지만, 주느비에브는 기이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기에 기이가 제대를 할 때까지 기다릴 결심을 한다. 하지만 전쟁터에 있는 기이는 전장의 상황이 악화되어 연락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이에 에므리 부인은 기이가 변심하여 잊은 것이라며 주느비에브를 롤랑과 결혼하기를 집요하게 설득을 하고, 주느비에브 역시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롤랑과 결혼을 한 후 쉘부르를 떠나게 된다. 한편 2년 후 전장에서 돌아온 기이는 주느비에브가 결혼하여 우산 가게도 팔고 떠났다는 대모의 말에 크게 상심하여 직장생활도 불성실하게 임하다 때려치운 뒤 술로 허송세월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병상에 누워있던 대모가 세상을 떠나고 그런 대모를 돌봐주던 마들렌이 떠나려 하자 그녀를 붙잡게 된다. 평소 기이를 마음에 두고 있던 마들렌은 더 이상의 방황을 그만둘 것을 당부하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청혼을 한 기이는 대모가 남긴 유산으로 주유소를 개업한뒤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나고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마들렌과 프랑수아즈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간 뒤 차에 기름을 넣으러 온 주느비에브와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짧게 서로의 안부를 눈 뒤 주느비에브가 자신의 딸 '프랑수아즈'가 기이를 많이 닮았다는 말로 기이의 아이임을 알리며 만나 보겠냐고 하지만 기이는 거절을 하고 그렇게 둘의 짧은 만남이 눈이 내리는 주유소에서 끝나는 것으로 영화의 막이 내린다.
영화소개
영화 쉘부르의 우산은 1964년 자크 드미 감독의 작품이다. 1961년 감독의 전작 '롤라'와 1967년 작 '로슈포르의 여인들'과 함께 '자크 드미 감독의 낭만 3부작'으로 불린다. 이 영화는 라라랜드에서 오마주를 할 만큼 뮤지컬 영화의 고전이며 명작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데 'oui(위)' 나 'non(농)'같은 한 음절 단어에도 음을 붙였다. 이런 시도는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는데 이런 이유로 오페라 영화로 분류되기도 하고, 실제 감독의 의도도 '시네 오페라'였다고 하니 뮤지컬이라기보다 오페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쉘부르의 우산은 음악만큼이나 뛰어난 영상미가 있는 영화이다. '영상의 시인'이라는 별명답게 영화 곳곳에 파스텔 톤의 색채를 아름답게 드러낸다. 의상이나 배경 벽지의 색깔을 보면 눈이 시원할 정도로 영상미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1964년 개봉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그해 열린 1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필름 재질의 문제로 손상되었다가 자크 데미의 부인이었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1992년에 복원을 했고, 현재 볼 수 있는 DVD가 1992년 복원판이다.
감상평
1992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관철동의 코아아트홀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타이틀이 '프랑스 영화 특선'이었던것 같다. '금지된 장난', '태양은 가득히', '쉘부르의 우산'이 세 작품을 개봉했는데 친구와 오랜 고민 끝에 '쉘부르의 우산'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가난한 연인이 현실적인 이유로 이별을 하고, 각자의 인생을 잘 산다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다. 그런데 그런 간단함이 나의 가슴을 꽤 오랜 시간 머무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찔할 정도인 까트린느 드뇌브의 미모에 넋이 나갔었지만 차츰 대사처리가 익숙해지고 나서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니 슬펐다. 사랑이라는 것이 현실이라는 망치에 무참히 깨져버리는 유리병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주느비에브의 선택이 원망스럽지 않았고, 엄마의 설득이 얄밉지 않았다. 현실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면서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 한 이 영화의 엔딩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서는 등 뒤에 아무런 미련이 없고, 어떠한 여운도 없는 완벽한 연출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물이 겨웠던 생각이 난다. 눈발이 내리는 주유소 마당을 비추는 엔딩은 영화가 끝났음에도 의자에 폭 파묻히게 만드는,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쉘부르의 우산' 나의 인생영화 중 하나다. 영화의 엔딩만큼이나 부드럽고 아름답게 권하고 싶다.